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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에 떡으로 연매출 18억 올린 형제

woodsmell 2012. 6. 27. 09:54

 

서른에 떡으로 연매출 18억 올린 형제

Daum과 함께하는 청년일자리 프로젝트…외식 ① 자이소 박호성·박경민 대표

하이서울뉴스 조미현 | 2012.06.26

[서울시 하이서울뉴스] 자이소의 떡들을 보고 있으면 입이 '떡' 벌어진다. 실제로 자이소의 카피 중 하나는 '입이 떡 벌어지는 예쁜 떡'이다. 자이소는 떡 메뉴 이름도 찬란하다. 티라미수 같은 느낌의 '러브미텐더'. 마늘빵보다 훨씬 부드러운 '갈릭을 기다려', '내 마음을 받아줘'와 '백두산에서 내려온 백호랑이' 떡케익 등 기발하고 위트 있다. 맛은? 이렇게 말씀드리면 느낌이 오시려나 모르겠다. 혼자만 맛보고 와서 죄송합니다!

자이소의 박호성(31), 박경민(30) 형제 대표에게 궁금한 것은 딱 하나였다. 창업 4년차밖에 안 된 갓 서른 넘은 총각들이 어떻게 '고작' 떡으로 연매출 18억을 올리게 됐는가(사실 연매출은 18억~20억 사이 어디쯤 있다고 한다). 하이서울뉴스 편집실 동료들도 성공비법을 전수 받고 오라며 등을 떠밀었다. 그래서 부끄러움도 잊은 채 만나자마자 다짜고짜 돈 얘기부터 시작했다.

초기 창업 자금은 어떻게 모으셨고, 얼마로 시작하셨죠?

박경민(이후 동생): 고등학교 졸업하고 군대부터 갔다 와서 바로 직장 생활을 했어요.


박호성(이후 형): 23살이었죠. 1년 먼저 제대한 제가 동생이 모아 놓은 100만원으로 방 구하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일주일에 한 번씩 돈을 받아도 남는 게 없는 거예요. 어머니께서 그럼 외삼촌 떡공장에 한 번 취직 해봐라 하셨죠. 마침 월급 받아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어요. 더블백 가방 하나 메고 대구에 갔죠. 이후 다른 회사로 옮겨 다니면서 28살까지 직장생활을 했어요. 동생도 27살까지 일했고요.

외삼촌 떡공장에서는 무슨 일을 하셨나요?

동생: 저는 생산만 했습니다.

형: 저는 다 해봤습니다. 원래는 생산으로 들어갔는데 외삼촌께서 인력이 모자란다 싶으면 사무직으로 가라, 영업직으로 가라, 하며 시키셨죠(웃음). 결국 그게 지금 도움이 되고 있어요.

젊은 청년들이 떡이라니 좀 의외입니다. 전부터 떡에 관심이 있으셨어요?

동생: 안 한다고 맨날 도망 다녔어요(웃음). 처음 떡을 만들 때인데 술을 안 마시는데도 손을 많이 떨었어요. 너는 떡 만들지 마라, 재능이 없다는 말도 많이 들었죠. 그런데 어느 날 형을 따라 매장에 나갔는데, 내가 만든 떡을 고객님들이 사먹고 계시는 거예요. 내가 참 좋은 일을 하는구나, 정직한 일을 하는구나, 하고 느꼈죠. 그때 이 길이라고 결심했던 것 같아요. 그전까지 제 꿈은 술집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며 수금하는 왕사장이었거든요(웃음).

형: 23살 때 저는 수트 입고, 셔츠 입고, 넥타이 매고, 구두 신고, 옆에 가방 하나 딱 들고 있어야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했어요. 뭔가 멋있어 보이면 월급이 적어도, 일이 힘들어도,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현실은 다르더라구요. 대학 안 나왔지, 잘 하는 거 없지, '빽' 없지, 돈 없지...

대학 간 친구들이 부럽지는 않으셨어요?

형: 아니요. 아직까지도 대학에 가야 된다는 생각은 안 해요. 오히려 그 친구들이 대학에서 허비한 4년의 시간을 저는 사회에서 잘 보냈으니까요.

얘기하다 보니 두 분은 콤플렉스가 없어 보입니다.

동생: 딱 하나. 외모 콤플렉스가 있죠(웃음). 공부에 취미가 없어서 고등학교 때 졸업이 최대 목표였어요. 저랑 딱 같은 애가 있었는데 아버지가 영등포에서 레스토랑을 하셨죠. 이 친구가 꼴등을 하면 자존심이 팍 상하는 거예요(웃음). 꼴찌에게도 그들만의 리그가 있거든요(웃음). 인생이 재미있는 게 역전의 드라마가 가능하다는 건데, 얼마 전 0.01%를 위한 자산관리세미나에 초대 받아 갔었어요. 그런데 금방 나와 버렸죠. 재미 없더라구요.

■ 창업자금 5천만원은 거의 다 써버리고...그 해 겨울은 너무 추웠네

형: 다시 창업자금 얘기로 돌아가면, 우리나라에서 남자 둘이서 의식주 해결하면서 돈 모으는 게 상당히 힘듭니다. 밥도 안 해먹으니 매일 외식 해야 되죠. 여기 쓰고 저기 쓰고 하다 보니 둘이 5년 모은 게 고작 2천만 원이에요. 대단히 부끄럽습니다(웃음).

동생: 근데 저희는 그 돈으로 1년에 한 번씩 외국 가서, 현지 조사를 했죠. 사진도 찍고 각종 디저트도 먹어 보고...직장 다닐 때부터 창업을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친구들이 저희를 제일 부러워했어요.

형: 거기에 창업대출 3천만 원을 받아서 총 5천만원으로 장사를 시작했어요. 턱도 없죠. 송파에 떡 공장 할 지하공간부터 구했는데, 원래 인터넷이 주가 아니고 1층에 가게를 구해 일반 떡집처럼 진열도 하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더라구요. 공간 구하고, 인터넷 쇼핑몰 차리고, 기계 구입하고, 보증금 내고, 5천만원을 거의 다 썼죠.

그럼 당시 어떻게 먹고 사셨어요?

형, 동생: 못 먹고 살았어요(웃음)!

형: 둘 다 똑같이 대답이 나오잖아요(웃음). 남자 네 명이 지하공장에서 일하고 그 건물 6층의 옥탑방에 올라가서 살았는데 너무 좁아서 지그재그로 잤거든요. 씻는 건 3일에 한 번 목욕탕이나 PC방 화장실에서 해결했죠. 밥은 하루 한 끼. 피자나 김밥천국... 그렇게 2008년 12월 자이소를 오픈했죠.

동생: 그 해 겨울은 길었지, 형(웃음).

형: 엄청 길고 추웠지(웃음).

이거 잘못 시작했다, 싶지는 않았나요?

형: 솔직히 말씀드려서 즐겁지는 않았는데(웃음), 재미나게 일하려고 서로 노력은 했던 것 같아요. 어휴, 우리 왜 장사가 안 돼, 그러지 않고 내일은 장사 잘 될 거야, 하면서. 주문 한 건 들어오면 함성 지르고 그랬어요.

첫 주문 날을 기억하세요?

형: 그럼요! 주문 케익이었어요. 교회 이름과 십자가를 새겨 달라는...그 당시에는 주문 떡케익이 드물었거든요. 4명 중에서 아무도 배달은 안 간다는 거예요(웃음). 그래서 제가 갔죠. 직접 생산, 직접 배달, 직접 고객 응대인 거죠. 떡 만들고 새벽 6시에 취침하고 운전도 하려면 너무 졸렸어요. 2008년 12월부터 2009년 4월까지 교통사고만 다섯 번 났습니다(웃음).

언제쯤 숨통이 트이셨어요?

형: 2009년 4월부터예요. 처음으로 광고를 시작했죠. 네이버에 70만원 짜리로요. 그 전까지는 들어온 고객을 잡을 수 있는 준비가 솔직히 안 되어 있었거든요. 하지만 4월에는 확신이 있었어요. 제품이 다른 곳보다 월등했고, 디자인도 확실했고, 쇼핑몰 자체도 기존의 전통적인 분위기에서 많이 벗어났고...

동생: 네 명이서 고생했으니 일주일 동안 해외여행을 다녀오자고 했죠. 가기 직전에 <불만제로>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취재를 해갔어요.

형: 저희가 도정한 지 10일 이내의 쌀이랑 천연색소만 쓴다는 게 알려지면서 입소문이 났어요. 매출도 서서히 오르고 있었죠. 방송작가님도 수십 만 명의 엄마들이 가입한 '맘스홀릭'이란 인터넷 카페에서 자이소를 알게 됐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때부터는 자연적으로 홍보가 됐어요. 휴가 갔다 오니까 전화통에 불이 났고, 정신없이 일했죠. 또 잠잠했는데 6개월 뒤에는 <모닝와이드>란 프로에서 12월 24일에 30분 분량이 방영됐어요. 그 때부터 다시 매출이 늘어났어요.

■ '우리 회사는 나가면 못 들어옵니다, 조금이라도 빼가세요'

떡 제품 자체는 물론이고 홈페이지, 홍보 카피, 로고 등 모든 디자인이 특별합니다. 깔끔하면서도 소박하고 그러면서도 은근히 새롭구요. 고객들이 형제 사장은 물론 직원들까지도 식구처럼 느낄 정도로 훈훈한 사이트 운영도 인상적이었어요. 디자이너나 웹마케팅 전문인력은 외부 인력을 쓰시나요?

형: 아닙니다. 그냥 다 같이 합니다. 직원들한테 숙제를 냅니다. 생산 분야든 사무실 쪽이든 다 과제를 줍니다. 그럼 갖고 오거든요.

동생: 예를 들어 디자인 시안 보고 저희가 이거 되겠다, 안 되겠다 말하면, 생산부에서 이 부분은 무슨 색깔로 하자고 하고, 다음에 재료를 고르는 식이죠.

직원은 어떻게 뽑으세요? 직원이 총 몇 명인가요?

형: 25명입니다. 일단 지금은 저희가 사람을 뽑지 않습니다. 직원들이 뽑죠. 저희랑 직접적으로 일하지 않는 사람들, 예를 들어서 카페에서 일할 사람을 뽑는데 저희가 이 사람 써라 마라 하면 안 되니까요. 직원들이 자기들한테 맞는 사람을 직접 뽑는 게 맞는 거죠.

많은 사람들이 배우겠다며 자이소 문을 두드릴 것 같아요.

동생: 일손이 많이 필요할 때는 수시로 사람을 구하기도 합니다. '우리 회사는 나가면 못 들어옵니다. 조금이라도 배워서 빼가세요'라고 하면 모두 열심히 하겠습니다, 라고 말은 하는데...사실 쌀가루 묻히고 몸이 힘든 게 좋은 사람은 없거든요. 한 달만 버티면 원하는 저녁밥은 무엇이건 사드리겠다는데도 아직까지 버틴 사람이 많지 않아요.

형: 사업하면서 제일 어려운 게 사람 관리입니다. 제 마음은 어떻게든 좋은 사람을 잡아두고 싶거든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베풀려고 그래요. 많지는 않아도 동종업계에서는 저희가 월급도 잘 드리는 편이고, 전 직원이 해외로 휴가도 갑니다. 돌아가며 해외 연수도 있고요.

동생: 그리고 일단 경력자는 안 뽑습니다. 자기가 경력이 화려하다고 갖고 오는 사람은 웬만하면 안 뽑습니다.

나름의 인사철학인가요?

형: 저희 회사 평균 연령이 30세 정도입니다. 나이 드신 분들한테는 죄송하지만 경력자를 안 뽑는 이유는, 생각이 굳어 있기 때문이에요. 백지에 그리는 것은 쉬운데 그림이 이미 그려져 있는 데서 하려면 어렵거든요.

동생: (인터뷰하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갈릭을 기다려'를 가리키며) 이런 제품들을 30년 떡 한 사람한테 가져가면 이런 게 떡이냐고 말할 분도 계실 거예요. 이게 사실 백설기로 만들었거든요. 촉감이 다르죠?

형: 기존에 우리가 먹던 떡들은 찜기에 찌거든요. 근데 이건 오븐에 구웠어요. 경력자는 그런 생각을 못 합니다. 저기 진열대 안의 네 번째 제품은 일본 오코노미야키를 벤치마킹해서 만든 건데 저희는 생각도 못 한 거예요. 신입 직원한테 품평회(직원들은 이 품평회를 악명 높다고 표현한다) 때 '너, 떡 한 번 만들어 내봐라' 했더니 나온 아이디어예요. 일본에 연수 한 번 다녀오더니 말이죠.

■ 더 많은 사람들에게 어떻게든 떡을 먹이기 위해서

이렇게 좋은 떡을 많이들 사드셔야 할 텐데, 최근 떡 인구가 늘어나고 있나요? 고객들 중 젊은 세대도 있는지요?

형: 사실은 인터넷 쇼핑몰 주문의 80% 이상이 생일, 백일, 돌 관련 건입니다. 엄마들이 아기들 때문에 구입하거든요. 자기가 먹기 위해 주문하는 분들은 극히 드물어요. 뭐가 문제일까요? 떡이 몸에 좋은 건 아는데 왜 사람들이 빵에 열광할까요? 떡은 여전히 옛날 것입니다. 반면 빵집은 으리으리하고 깔끔하고 현대적입니다. 떡집 가면 쌀가루 허옇게 묻힌 아저씨가 나와서 2, 3천원에 한 봉지 이런 식이잖아요(웃음). 저희가 강남 한복판에 카페를 낸 이유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어떻게든 떡을 먹이기 위해서예요.

자이소 떡카페가 자리잡은 포스코 사거리와 차관아파트 사이 대로변에는 발렛파킹 서비스와 24시간 운영이라는 팻말까지 내건 국내 최고의 커피전문점 군단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이제 막 시작하기도 했지만, 냉정하게 말해 카페는 자이소의 돈을 까먹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형인 성호 씨는 다른 부분에서 카페가 돈을 채워주고 있다고 확신했다. 자이소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준다는 것이다. 충성 고객들의 열화와 같은 제안으로 홍대점을 오픈할 계획도 갖고 있다. 외국인들에게도 떡을 알리려고 캐나다 진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물론 한국 외식업계보다 10년쯤 앞서간다고 형제 사장이 인정하는 일본 시장에도 조만간 진출할 것이다.

공부에는 취미가 없다던 동생 경민 씨는 현재 방통대 경영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다. 인터뷰 직전까지 영어회화 과외를 받고 왔다. 경민 씨가 외삼촌의 떡 공장에 다닐 때부터 썼던 빼곡한 노트에는 "40세가 되기 전에 연매출 1000억 원 이상"이라는 다소 황당한 목표가 있다. 그 목표는 아직도 유효하다고 한다. "지금 서른이니까 아직 10년이나 남았잖아요."

지금 잃어버린 열정, 용기, 확신을 되찾고 싶다면, 혹은 창업 바이러스에 제대로 전염되고 싶다면, '용감한 떡 형제'에게 찾아가 무조건 '닥치고' 배워보는 건 어떠신가. 불과 몇 시간 만난 것만으로도 이 몸은 힘이 불끈 솟았다. 아니, 너무 세게 '필'을 받았는지 하마터면 '프랑스 파리 자이소 지점은 제가 내보겠어요'라고 제안할 뻔했다. 하이서울뉴스 동료들이 말려주지 않았다면 일 낼 뻔했다.

문의: 자이소 1599-6632, http://www.jais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