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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세 청년, 직장 때려치우고 대학로 맛집 사장 되기까지

woodsmell 2012. 7. 4. 12:19

31세 청년, 직장 때려치우고 대학로 맛집 사장 되기까지

청년창업 기획, 외식업 분야 ② - 큐슈 지도리 우동 겐로쿠 대학로점 정보람 사장

시민리포터 김영옥 | 2012.06.28

[서울시 하이서울뉴스] 18세 때,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책을 읽고 인생의 목표를 정한 청년이 있었다.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해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에 들어갔다. IT업계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창조적인 직업인 줄 알았는데 틀에 박혀 소프트웨어를 생산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길은 사업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직장생활은 적성에 맞았고 연봉도 오르고는 있었지만 자신의 '꿈'하고는 맞지 않았다.

언젠가 그만 둘 때를 대비해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은 경험을 쌓고 자금을 모으는 과정이라 생각했다. 4년 정도 일을 하고 있을 무렵, 더 늦기 전에 빨리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직장생활 4년 만의 일이다. 부모님의 반대가 있었으나 기술이 있으니 나중에라도 직장은 다시 다니면 된다고 설득했다. 청년 창업가 정보람 사장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1년 준비한 아이템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우선 커피가 제일 접하기 쉬웠기 때문에 배워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커피전문점을 창업 아이템으로 정하고 창업스쿨, 세미나, 노동부의 계좌제 수업 등을 받으며 바리스타 교육을 받았다. 실전 경험을 쌓을 생각에 커피전문점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던 중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커피와 샌드위치를 매칭시켜 배달하는 가게였다. 배달 때문에 오토바이도 처음 타봤다. 일을 하는 동안 배우는 것도 있었다. 배달은 홍보만 꾸준히 하면 투자금과는 상관없이 유지가 되겠다 싶었다.

그러다 창업에 대한 이론적인 지식이 전무하다는 생각에 그는 서울시 창업스쿨에서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2번씩 나가 4~5시간씩 3개월 동안 창업교육을 수료했다. 창업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다 짚고 넘어갔기 때문에 유용하고 필요한 정보들이었다. 창업스쿨을 수료한 후 사업계획서도 써 보고 이런저런 준비를 하는 동안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준비기간이 길어지니 많이 지쳤고 뭐라도 빨리 시작해야겠다는 조급함이 앞섰다. 수료한 서울시 창업스쿨의 사후 관리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창업 아이템에 대한 컨설팅을 받게 됐다. 그 때 만난 사람이 창업전문가인 스타트비지니스의 김상훈 소장이다. 나름 소신을 가지고 준비한 커피와 샌드위치 배달전문점으로 컨설팅을 받았지만 그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라"였다.

1년 정도 준비한 만큼 미련도 많았고 그냥 버리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의 아이템보다 잘 할 수 있는 게 더 많을 거라며 김소장이 던진 조언은 "5억 정도 돈이 있어서 먹고 사는 데 지장 없다고 가정한 후 망할 각오하고 시작한다면 달라질 것"이라는 거다. 충격이었다.

치킨집, 스파게티집, 맥줏집을 전전하다 드디어 롤모델 발견

정보람 사장의 창업 자금은 7천만여 원. 입사할 당시부터 5년 뒤 창업을 염두에 두고 계획을 세워 모은 돈이었는데, 창업비용을 1억 원 미만으로 책정해 그에 적당히 맞는 것을 시작하려 생각했던 것이 큰 잘못이었다. 김상훈 소장은 당시 정보람 사장에게 외식업계에 자신이 아는 사장들을 두루 만나 볼 것을 권유했다. 아이템을 다양하게 생각해 보라는 뜻이었다. 치킨집, 스파게티집, 맥줏집 등을 다니면서 깨달은 바가 컸다. 그동안 창업을 염두에 두고는 있었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여지는 것들만 봤지, 진짜 경쟁력이 무엇인가를 간과했었다. '아이템 선정부터 잘못 됐구나' 싶으면서 창업 아이템을 재고하게 됐다. 소비자의 마인드에서 창업 경영자의 마인드로 바뀌게 된 계기가 됐다 할까.

최종적으로 창업 아이템을 면 종류로 압축해 라면집, 우동집, 스파게티집 등 다양한 업종들의 사장을 만나던 차에 특색 있는 일본 정통 우동집으로 홍대 앞에서 인기몰이 중인 '겐로쿠 우동'을 알게 됐다. 당시 겐로쿠 우동은 막 프랜차이즈를 준비 중이었다. 어렵게 이강우 대표와 만나게 됐다. 겐로쿠 우동은 작은 우동집이었지만 경영 철학이 남달랐다. 외식업의 기본인 맛으로 승부를 거는 것은 물론 직원들을 가족처럼 아꼈다. 자비를 들여 직원을 일본어학원에 보내기도 하고 운동을 좋아하는 직원은 헬스장에 보내주기도 했다. 직원들이 정해진 공간 안에서 매일 같은 일만 하면 타성에 젖게 되고 사기가 떨어질 수도 있고 그것은 곧 고객을 대할 때 그대로 드러날 수 있기 때문에 직원들의 재교육이야말로 사기를 돋아 주는 좋은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큰 회사에서나 가능한 직원들의 복지가 11~12평 규모의 작은 우동집에서 실천에 옮겨지고 있었다. '이거다!' 싶었다. '안정적이고 유행을 덜 타며, 오래갈 수 있는 외식 아이템'을 찾고 있던 그에게 이러한 모습은 진솔하게 다가왔다.

창업을 염두에 뒀다면 모델로 삼을 수 있는 '그 한 사람'을 찾을 수 있어야 하고, 그 앞에서 모든 것들을 수용할 수 있다는 각오로 머리 숙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정보람 사장의 생각이었다. 그가 겐로쿠 우동 본점 이강우 대표를 롤모델로 삼을 수 있었던 것 또한 이런 부분들과 무관하지 않다.

6개월간 발품을 팔아 생긴 안목으로 마침내 가게를 계약하다

그 뒤 3개월 동안 홍대 앞 겐로쿠 우동 본점에서 직원으로 일하며 시간이 나는 대로 점포를 찾으러 다니곤 했다. 전문점이라면 고객이 찾아 올 수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A급 상권의 B급지를 선택하기로 하고 외대 앞, 경희대 앞, 서울대 앞, 노원지역 등을 찾아봤지만 마땅한 곳이 없었다. 당시 살던 동네가 미아동이라 대학로로 관심 상권을 옮겨 계속 찾아봤다. 권리금과 보증금을 합해서 1억 정도로 점포를 구하려다 보니 마음에 드는 점포를 구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발품을 팔며 돌아다니며 보았던 대학로 주변 점포들이 어느새 새 주인을 만나는 것을 지켜보며 "저 점포는 저래서 잘 되는구나. 이 점포는 이래서 안 되는구나. 여기에서 시작했으면 큰 일 날 뻔했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점포를 보는 안목이 생겼다.

계약을 할 것도 아니면서 자꾸 찾아오는 그에게 더 이상 찾아오지 말라고 말하던 부동산도 부지기수. 게다가 거래를 하지 않을 사람에게 좋은 점포를 보여주는 부동산은 없었다. 여러 부동산을 찾아가 봐도 똑같은 점포를 보여주는 경우가 허다했다. 상대적으로 저평가 된 점포를 찾아야만 했다. 앞·뒤·옆집과 업종 간 궁합도 맞아야 했고, 무엇보다 아이템이 갖고 있는 파급력을 염두에 둬야 했다.

거의 지쳐갈 즈음, 여러 번 찾아가 믿음이 좀 쌓였던 한 부동산에서 지금의 점포를 보여줬다. 거의 망해가는 햄버거 가게였는데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바로 앞집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는 맛집이었다. 잘 되는 가게 옆에 가게를 얻으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바로 점포 계약을 하겠다며 심야시간을 불사하고 계약을 완료했다. 드디어 대학로 상권에, 골목에서 몇 걸음 들어가긴 하지만 실평수 13평의 마음에 드는 점포를 얻을 수 있었다. 부동산을 드나들기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나서였다.

고참 직원 창업스쿨에 등록시키고, 그 시간 동안 사장님이 대신 일해요!

이제 문제는 자금이었다. 보증금과 권리금에 시설투자 비용까지 약 1억 5천만여 원 정도가 들어가야 했다. 만들어 놓은 창업자금은 다 합쳐봤자 7천만 원. 신용보증재단으로부터 2천만 원, 카드론에서 천만 원을 대출 받는다 해도 턱없이 모자랐다. 더 이상의 대출이 여의치 않았던 그는 부모님께 도움을 청했다. 부모님이 사는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야 했다. "최악의 경우 장사가 잘 안 된다 해도 권리금과 보증금을 되돌려 받을 수 있으니, 집을 팔아야 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고 부모님을 설득했다. 우여곡절 끝에 프랜차이즈 1호점으로 '큐슈 지도리 우동 겐로쿠 대학로점'이 드디어 영업을 시작하게 됐다. 작년 7월의 일이다.

겐로쿠 우동은 시스템이 특별해 프랜차이즈이지만 점주가 직접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편이었다. 식자재는 일반 업체를 선정해 구입했다. 물론 음식의 퀄리티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한 장치로 본사의 의사를 타진해 보는 안전장치 정도는 있다. 주방설계도 효율성을 고려해 직접 참여할 수 있었다. 점주가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 본인의 생각을 입힐 수 있어 더 좋았다. 일반적으로 프랜차이즈 사업은 본사에서 많은 부분들을 다 알아서 해 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점주는 늘 '초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창업 전 직접 본점에서 3개월간 일해 봤던 것은 무척 큰 도움이 됐다.

막 대학로점 영업을 시작하면서 그가 제일 신경 썼던 부분은 직원들에게 돈 보다 비전을 제시해 주는 것이었다. 네 명의 직원들이 신나게 힘을 합쳐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을 찾게 해 준다면 초보 창업자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리라는 생각이었다. 지금도 계속 다양한 방법들을 고민하고 준비 중이지만 지난 4월 중순 제일 고참인 직원 한 명을 서울시 창업스쿨에 등록시켰고 현재는 창업스쿨을 수료했다. 다. 물론 영업시간 중 자리를 비우는 부분은 정보람 사장이 대신했다. 자신처럼 그들의 목표 또한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창업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다. 직원들의 반응은 무척 고무적이었다.

또한 정 사장은 직원들과의 의미 없는 회식은 피하는 편이다. 일단 회식을 하게 되면 최고의 접객 장소로 자리를 마련해 직원들이 고객을 대하는 모습들을 자연스레 보고 배울 수 있도록 했다. 실제로 직원들은 "우리도 저렇게 해 봐요"라며 먼저 고객을 대하는 방법을 제안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루 매출 7만 원인 시절에도 지킨, 어머니도 못 말리는 나만의 원칙

정보람 사장에 의하면 겐로쿠 우동의 장점은 우리나라에는 없는 우동이라는 것이다. 보통 일반 우동에는 휴게소 우동과 사누끼 우동이 있는데, 겐로쿠 우동은 그에 비하면 맛도 강하고 인상도 강한 우동이다. 하지만 한국식으로 변형된 우동이 아니라 일본 전통 우동으로 겐로쿠 점포가 아니면 먹지 못하는 우동이라 자부하는 편이다. 아주 특별한 국물 맛의 비결은 말린 고등어, 전갱이, 멸치, 꽁치, 가다랑어로 우려낸 육수의 조화로 완성된다. 특히 대표 메뉴 '지도리 우동'은 천연재료 5가지의 깊은 맛이 우러난 육수에 직접 뽑은 면, 쫄깃한 닭과 구운 대파의 조화가 인상적인 우동이다. 칼칼하고 시원한 맛 때문인지 해장용으로도 좋다는 게 고객들의 반응이다.

소비자를 사로잡는 겐로쿠 우동의 특장점은 또 있다. 그릇의 크기가 세 가지다. 보통 사이즈, 두 곱빼기, 세 곱빼기로 그릇이 나뉘고 담겨지는 양도 다르지만, 가격은 6~7천원으로 똑같다. 다 먹고 난 후에 면 사리도 무한리필 된다. 어떤 사람은 8인분을 먹기도 한다고. 하지만 음식을 남기면 '벌금'을 내야 한다.

개업 초반에 매출이 하루에 7만원이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인들에게 알리거나 요란한 홍보는 하지 않았다. '그래도 지인들을 불러야 한다'는 어머님의 말씀에 화를 내면서까지 3개월까지 절대 지인들을 부르지 않았다. 정돈되지 않은 초보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게 첫 번째 이유지만, 혹시 지인들이 창업 초반에 와서 팔아 준다고 왁자지껄 하면 겐로쿠 우동을 먹고 싶어 찾아 온 진정한 손님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고 이 집은 아는 사람들끼리 오는 가게라고 인식될까 봐 무척 조심스러웠다. 대신 정보람 사장은 그의 매장에 어쩌다 들어오는 손님에게 최선을 다해 음식을 내면서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들을 서서히 연습했다. 물론 모든 '외압'에도 불구하고 이런 경영 소신을 펼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의 생각은 적중했다. 우연히 찾은 고객에게 최선을 다해 음식과 서비스를 제공했고 입소문이 나면서 점차 찾는 사람들도 늘고, 매출도 늘었다. 대학로 인근 유명출판사 샘터 대표는 "여기 우동은 내 입맛에 딱 맞는다"며 창업 초기 손님이 별로 없었던 시기에 여러 명의 손님들을 동반하며 일주일에 4번 정도 찾은 일도 있었다.

앞집은 대박 집으로 연일 손님들이 많아 그의 점포 앞 의자는 대박집의 대기석이 되기도 해 억울할 때도 많았고, 줄을 서서 먹고 가는 앞집의 모습을 보며 속상해 한 시간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 겐로쿠 우동을 먹겠다며 그의 점포 앞에도 줄을 서는 사람들이 생겼고 그 뒤로 사람들이 따라 붙으며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이 골목은 맛집 골목이란 인식이 차츰 생겼던 것이다. 지금은 주말이면 줄을 서서 먹고 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승승장구 성공창업 12개월째,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잘한 일"

창업 초기에는 3개월 동안 쉬는 날 없이 일주일 내내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일했다. 체중이 12Kg이나 빠졌다. 친구를 만날 시간도 없었다. 설정한 목표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작년 7월, 15일간 영업한 첫 달 매출은 4백만 원 선. 8월에는 2천만 원의 매상을 올렸다. 좀 들쑥날쑥하지만 현재까지 매월 평균 3천만 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테이블 7개에 좌석 23석이지만 평일엔 7~8회, 주말은 15~16회나 되는 테이블 회전율을 보인다. 평일은 50테이블, 주말에는 100테이블 정도 된다.

"좀 놀랬죠. 이래서, 이 맛에 사람들은 큰 빚을 내더라도 다 갚을 수 있는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창업에 들어간 비용 모두를 다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결혼 자금으로 빚이 조금 더 생기긴 했지만 이 또한 곧 해결되리라 봅니다." 12개월째 성공 창업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겐로쿠 우동 정보람 사장의 귀띔이다.

창업 만 12개월. 아직 아기처럼 모든 것들을 배우고 있는 과정이라고 말하는 정보람 사장은 창업을 결정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도 잘한 일이란다. 지금은 사랑하는 아내가 됐지만 창업 초기 여자친구도 회사 직원들과 택시를 타고 와서 우동을 먹고 갈 정도였다. 직장인이었을 때보다 창업 한답시고 이런저런 준비를 하던 백수시절이었을 때를 더 많이 봐 온 여자친구다. 취업,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3포' 시대에 정보람 사장은 모든 것들을 차근차근 성공적으로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본인이 프랜차이즈 1호점 점주이지만 그는 현재 겐로쿠 우동 본점에서 프랜차이즈 가맹을 맺기 위해 찾아오는 이들의 교육도 맡고 있다. 그가 창업을 위해 준비했던 것들과 시행착오, 성공요인 등 그의 경험담들을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생생한 교육이 되기 때문이다. 정보람 사장은 성공 창업에 안착할 수 있었던 것은 좋은 분들에게 여러 가지로 도움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운도 좋았다고 회고한다. 신나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것과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 만족감이 뒤따르는 것 이외에 '음식'을 통해 여러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알아가는 과정 또한 참 좋다고 전한다. 문의 : 02) 742-8555


■ [쉬어가기] 창업 선배 정보람 사장의 조언

1. "창업은 취업의 대안이 될 수 없다." - 취업이 안 되서 창업을 한다는 것은 안 될 말이다. 어디 가든 잘 할 수 있는데 그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각오가 서면 그때 창업해야 한다.

2. "돈에 아이템을 맞추지 않아야 한다." - 너무 분수에 맞지 않는 것도 안 되지만, 노점이나 배달사업 등 자금에 맞춰 시작하는 것도 금물이다. 자금이 없다고 해서 경쟁력 없는 아이템을 선정해서 시작하면 하나마나인 일이 된다. 차라리 자금을 더 모으라고 권하고 싶다. 자금이 해결 됐다면 빨리 시작해야 한다. 너무 늦는 것도 좋지 않다.

3. "롤 모델이 될 만한, 가치관이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 본점 이강우 대표와 내가 늘 갖고 있던 경영 마인드가 통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야 새로운 비전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