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ould build the mansion that is higher than the dreams
I could have all the gifts I want and never ask please
I could fly to Paris. It's at my beck and call,
Why do I live my life alone with nothing at all
후렴
But when I dream, I dream of you,
Maybe someday you will come true.
When I dream, I dream of you
Maybe someday you will come true
I can be the singer or the clown in any role
I can call up someone to take me to the moon
I can put my makeup on and drive the man insane
I can go to bed alone and never know his name
꿈속에서나 볼 수 있는 것 보다 더 높은(좋은?) 저택을 난 지을 수도 있고요.
내가 원하는 어떤 재능이라도 난 가질 수도 있고요
그리고 "제발"이라는 부탁 같은 것은 저하고는 먼 이야기죠
난 파리로도 날아갈 수도 있어요.
그래요. 언제든 맘만 먹으면 갈 수 있지요.
하지만 왜 난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외로운 삶을 살아야 하죠?
그러나, 내가 꿈을 꾸면, 난 당신을 만나요.
언젠가 그 꿈속의 당신은 현실이 되어 나타나겠죠
그러나, 내가 꿈을 꾸면, 난 당신을 만나요.
언젠가 그 꿈속의 당신은 현실이 되어 나타나겠죠
난 가수도 될 수가 있고 또 어떤 역할도 해낼 수 있는 어릿광대가 될 수도 있죠
날 달나라로 데려다 줄 누군가를 불러낼 수도 있죠
그리고 화장으로 멋을 내고 그 남자를 미치게 만들 수도 있죠
하지만 난 혼자 잠자리에 들고 그의 이름도 몰라요.
흑인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재즈 디바의 호칭.
분명 자유롭고 풍성한 재즈의 매력은 흑인들의 것이 제격이다.
하지만 재즈 역사를 수놓은 위대한 디바들이 소화해 내지 못한
감성이라 할 '밝은' 서정성은 캐롤 키드(Carol Kidd)의 것이다.
백인 재즈 가수 캐롤 키드는 곡에 서정미가 더해지면 우울해지고 슬퍼지는
재즈의 한계를 넘어 투명한 서정미를 표현해 낸 특별한 뮤지션이다.
1945년 10월 19일 스코틀랜드(Scotland)의 글래스고우(Glasgow)에서 태어나
15살의 어린 나이에 로컬 재즈 밴드에서 노래했을 정도로 오랜 기간 활동해왔다.
재즈의 본고장 출신이 아니었지만
20여 년의 시간동안 꾸준히 밴드 활동을 이어갔고,
차츰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최고의 보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데뷔 20여 년 동안 자신의 앨범을 단 한 장도 내지 못했다.
기나긴 무명 활동 끝에 1984년 데뷔 앨범을 내놓는다.
하지만 스코틀랜드 출신의 10년 무명가수에게
대중들은 쉽사리 손을 건네지 않았고,
연이은 앨범 역시 영국 바깥에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스코틀랜드 무명 가수의 진가를 뒤늦게 알아본 사람은
스탠더드 팝 의 전설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로
그는 1990년 자신의 영국 투어에 무명가수나 다름없는
캐롤 키드를 초대해 '신이 내려준 목소리'라고격찬했고,
프랭크 시나트라의 후광과 언론의 주목을 업고 마침내
영국의 우물 안 개구리 처지에서 벗어나게 된다.
무명에 무명을 거듭해 온 캐롤 키드는 50줄에 가까워지는
1990년대가 되어서야 세계 정상의 자리에올라서는
'슈퍼 지각 성공'을 경험한다.
또한 이 때서야 엄청난 상복에 휩싸인다.
1990년 <와이어 매거진>(Wire Magazine)으로부터
최우수 재즈보컬리스트를 수상한 이래 '브리티시 재즈 어워즈'
'칸 국제재즈 어워드'(Cannes International Jazz Award ),
'에딘버러 페스트 비평가상'(Edinburgh Fest Critics),
'영국 재즈 어워드'(UK Jazz Award)',
'영국 음반소매상 협회상'(UK Music Retailers Award')
등의 각종 시상식에서 수상한다.
영미권에서의 활동에 상관없이
그녀의 음악은 국내 팬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바로 'When I dream' 때문이다.
이 곡은 1985년 작 앨범
미국에서 알려지지 않았을 당시에도
국내 팬들에게는 좋은 반응을 얻었고,
베스트 앨범 형식으로 그녀의 음악을 담은 앨범이
'When I dream'은 1990년대 초반 CF에 배경 음악으로 사용되어
한국 정서에 잘 맞는 곡으로 꾸준히 사랑 받아왔다.
캐롤 키드의 이름을 한국 팬들에게 알린 결정타는
블록버스트의 신기원을 이룩한 한국영화 <쉬리>였다.
'When I dream'이 엔딩 테마로 삽입되며
한국 대중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영화의 해외 진출과 더불어 이 곡 또한 일본등
동아시아 전역에서 다시금 인기를 누린다.
<쉬리> 덕분에 그녀는 모처럼 일본 공연을 갖기도 했다.
이후 음반 활동에 소홀했던 그녀는
환갑에 가까워진 나이에도 불구 2000년
2001년
꾸준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으며,
2000년에는 한국 팬들의 각별한 호응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한국인의 애청곡을 별도로 엮은 앨범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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