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성관계, 본인들이 결정할 분위기 됐다"
●혼빙간음죄 56년만에 폐지
남성만 처벌은 여성 비하…'간통죄 판단' 주목
헌법재판소가 26일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것은 성(性)과 관련해 변화한 시대상을 적극 반영했기 때문이다.
혼빙간은 그동안 은밀한 남녀간 성생활에 법적 잣대를 들이대는 시대착오적인 법조항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헌재는 "여성의 사회경제적 활동이 활발해지고 일부는 남성을 능가하는 능력을 갖고 있어 혼인과 상관없이 여성이 성관계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됐다"며 "국가가 나서 남자만 처벌하는 것은 여성을 사회적 약자로 보고 비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7년 만에 정반대 판결
헌재의 이번 결정은 7년 전 7(합헌) 대 2(위헌)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이 내려진 것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판결이다. 당시 헌재는 "남녀의 신체적 차이가 있고 피해 정도가 다르므로 혼빙간죄는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그러나 이번에는 혼빙간에 대해 정당성이 없다고 결론냈다. 헌재는 "남성이 여성의 마음을 움직여 성관계를 맺는 것에 대해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어 헌재는 "성관계를 맺어놓고 여성이 나중에 남성의 처벌을 요구하는 것도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강국 소장과 조대현 · 송두환 재판관 3인은 2002년 결정과 같은 요지로 합헌 의견을 냈다.
헌재는'혼인을 빙자하거나 기타 위계로써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를 기망해 간음한 자'라고 규정된 부분에 대해서 "고전적 정조 관념에 기초한 가부장적 성 이데올로기로 헌법에 어긋난다"고 적극적으로 해석했다. 또 "성개방 풍조를 감안했을 때 법으로 통제할 일이 아니며 폭행 등 강압적 수단을 동원했을 때만 강간죄로 처벌하면 족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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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헌재 결정으로 혼빙간으로 기소돼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은 모두 구제받을 수 있다. 그러나 혜택을 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혼빙간으로 고소되는 사건은 한 해 수백건에 이르지만 기소되는 사람은 적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연도별 범죄분석에 따르면 작년 혼빙간으로 입건된 502명 중 불과 27명이 재판을 받았고 6명은 벌금형에 처해졌다. 나머지는 모두 불기소(혐의없음 등) 등 처분이 내려졌다. 기소율이 5%에 불과한 것이다.
1981년 2625명이 입건돼 269명이 기소된 것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기소 인원도 대체로 해마다 감소해왔다. 1980년대에는 매년 10명 중 1명꼴로 재판을 받았지만 1990년대 이후에는 100명 중 3~4명꼴로 재판을 받고 있다. 헌재 역시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고소가 취소돼 종결되는 사건이 많아 혼빙간은 형벌 의미가 거의 없어졌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혼빙간 단독 범죄로 처벌받는 경우는 드물다. 작년에 기소된 27명 중 징역형이 확정된 사람은 대부분 결혼을 빙자로 돈을 뜯어내는 혐의(사기)등과 병합돼 처벌받았다. 검찰은 헌재 결정에 따라 현재 수사 중인 건은 모두 무혐의로 수사를 종결할 방침이다.
한편 형법상 혼인빙자간음죄가 폐지되더라도 피해자들이 민사소송을 통해 구제받는 것은 가능하다. 서울중앙지법 복수의 판사는 "민법상의 불법 행위는 형법이 정해놓은 것보다 범위가 넓어 성관계에 이르게 된 경위가 명백한 기망으로 인정된다면 위자료를 받아 금전적으로나마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간통죄는 어떻게
혼빙간 위헌 판결에 따라 향후 간통죄에 대한 헌법소원에 헌재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도 관심거리다. 간통죄는 1990년과 1993년,2001년과 2008년 네 차례 헌법소원이 제기돼 모두 합헌 결정이 났다. 1990년과 1993년은 6(합헌)대 3(위헌)으로,2001년은 8(합헌)대 1(위헌)로 압도적 합헌이었다.
그러나 작년은 9명의 재판관 중 5명이 위헌 의견을 내 가까스로 합헌(6명 이상이 돼야 위헌됨)이 유지됐다. 간통죄 입건 수는 2005년 7575명,2006년 7024명,2007년 6062명,작년 4609명으로 급감하고 있는 추세다.
법조계에서는 간통죄에 대해 "변화하는 시대상에 역행하는 법조항이므로 없애야 한다"는 의견과 "혼빙간과 달리 가정 해체와 연관되므로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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