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말하는 교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예배
조선시대의 효도는 세상을 떠난 부모에 대한 제사와 육체를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주요한 항목이었다.
기독교를 접하게 되면 교회와 예배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접하게 된다. 그리고 교회에서 요구하는 예배를 드리는
1. 교회
교회란 공동체를 말하는 것이지 신학교를 나와서 목사안수를 받은 목회자가 예배의식을 드리는 기독교 교회건물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무리들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에서는 십자가가 높이 세워져 있고 현관문에 교단명칭이 붙어있는 교회건물을 지칭하고 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4)
성경은 제자들과 교인들에게, 그냥 종교적인 공동체인 교회(에클레시아)를 만들라고 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자신이 주인이 된 교회,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진정한 교회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계시는 교회가 진정한 교회일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자,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주인이 되시는 교회가, 성경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세워진 교회를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간판만 붙였다고 성경적인 교회라고 말할 수 없다.
신전의 물건을 도둑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비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너희가 붙잡아 왔으니 만일 데메드리오와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에게 고발할 것이 있으면 재판 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피차 고소할 것이요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면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정할지라 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요 사건으로 책망 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는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자료가 없다 하고 이에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행19:37~41)
위의 사도행전에서 나오는 말씀 중에 ‘에클레시아’를 번역한 말이 두 개나 들어있다. ‘민회’와 ‘모임’이다. ‘민회’는 에베소시의 정치기구이며, ‘모임’은 아데미 신을 믿는 사람들이 소요를 일으킨 모임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당연히 ‘교회’라고 번역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모든 성경에서 언급한 ‘에클레시아’가 죄다 교회라고 믿는다면 웃기는 얘기이다. 다시 말하자면,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는 예수님의 교회 혹은 예수 그리스도가 몸으로 세운 교회만을 뜻한다. 그래서 보혈의 능력이 나타나지도 않으며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는 교회가,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일 수가 없다.
성경이 기록된 당시에는 지금의 신학교도 없었고, 신학과정을 이수해서 목사안수를 받은 사람이 기름 부은 종이라는 개념도 없었다. 그렇다고 필자가 모든 목사가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다만 신학교를 졸업한 목사만이 기름 부은 하나님의 종이고, 목사가 규칙적인 예배의식을 주관하며 설교를 하는 교회만이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뿐이다. 성경이 기록된 당시의 사도들과 제자들은 신학교를 알지도 못했고 지금의 신학 교리에 대해서 무지하였다. 그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고질병을 치유하고, 기적과 이적으로 복음을 전파해서 영혼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세웠다.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는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들의 무리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증거나 능력, 열매가 없다면 교회가 아니라, 기독교를 믿는 종교인들이 정규적인 예배의식을 거행하는 종교건물일 뿐이다.
2. 예배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4:23,24)
위의 말씀은 우리가 어떤 자세와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예배는 우리네 교회에서 시행하는 예배의식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네 교회에서는 사도신경으로 시작해서 축도로 마치는 1시간짜리 예배의식을 예배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면, 이러한 예배는 예배(worship)가 아니라 예배의식(worship service)일 뿐이다. 예배의식은 단지 껍데기일 뿐으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의 마음과 자세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해야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육체의 눈으로 사람들의 신앙행위를 평가하지만,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사람의 속내와 동기와 목적을 날카롭게 살펴보신다. 그러므로 교회의 예배시간에 경건한 모습으로 앉아서 찬양을 부르고, 대표기도에 동의하고 설교를 진지하게 듣고 큰소리로 ‘아멘’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받아주시는 예배와는 별개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교회에서의 예배의식에 성실하게 참석한다면 예배를 잘 드리는 사람이라고 착각하기 일쑤이다. 그러나 성경을 찾아보라. 작금의 우리네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의식을 시행하라고 명령한 적이 없다. 그렇다고 필자가, 그런 예배의식이 성경에 없다고 시행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마음의 자세와 삶의 태도가 없이, 예배당에 앉아 경건하게 앉아있다고 해서 예배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네 교회에서는 형식적으로 드려지는 예배의식에의 참석이 성실한 신앙생활의 척도로 삼고 있다. 그래서 속마음이 감추어진 껍데기뿐인 신앙인들을 양산하고 있다.
수가성 여인에게 하신 위의 말씀에서, 예수님은 예배자가 갖추어야 할 조건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 두 가지 조건은 ‘영과 진리’이다. 헬라어 원어로는, ‘프뉴마토스 카이 알레데이아’라는 구절로서 ‘영혼과 진리’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사람의 행위나 겉모습이 아니라 영혼의 상태로 평가하신다. 영혼의 창(窓)은 마음이고, 마음의 창은 생각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마음과 생각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자의 조건을 충족시켜야 할 것이다. 또한 하나님이 기뻐하는 예배자는 ‘진리’로 드려야 한다. 진리란 무엇인가? 바로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라고 말씀하셨다. 예배란 헬라어로 ‘프로스퀴네오’라는 단어로서, ‘절하다’ ‘경배하다’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예배자는 오직 예수님만을 예배하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예배의식에 참여하는 목적이, 예수님을 예배하는 게 아니라 세속적인 축복을 바라거나 자신의 의를 드러내려고 예배의식에 참석하는 이들이 허다하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1,2)
여기에서 소개하는 ‘예배’라는 헬라어 단어는 위의 ‘프로스퀴네오’가 아니라 ’라트레이아‘이다. 이 단어의 뜻은 ’제사‘이다. 구약의 제사법에는 소나 양 같은 제물이 필요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나 양을 성전에 끌고 와서 죽여서 제사장에게 넘겨주면, 제사장이 불에 태워 번제로 드렸다.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은 따로 없다. 제사장이 제사를 드리는 자리에 경건한 모습으로 참석하여 서 있기만 해도 되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더 이상 짐승을 불에 태워 드리는 구약의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어졌다. 예수님이 영원한 제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희생되신 후에는, 그의 이름을 믿는 자들은 죄다 죄가 용서함을 받는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더 이상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되는 걸까? 아니다. 성경은 이제부터는 우리가 살아있는 제물이 되어, 영적 예배(제사)를 드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즉 일상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위의 로마서의 말씀은 하도 유명한 구절이라 모르는 이들이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말씀대로 사는 이들을 찾기 어렵다. 여전히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의식에 성실하게 참석하려고 하지만, 정작 삶의 현장에서 자신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물의 삶을 살아가려고 하지 않는다. 왜 그런지 아는가? 작금의 교회에서는 1분짜리 영접기도를 마치고 주일성수를 하면 천국은 따 논 당상이라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런 약속이 결코 없다. 만약 그랬다면 천국의 자격이 녹록치 않다는 다른 말씀과 충돌되고 있으며, 오직 소수의 사람만이 천국에 들어갈 거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상통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다수의 교인들은 눈을 가리고 귀를 닫은 채, 담임목사의 머리를 타고앉아 조종하는 귀신들의 소리를 들으며 천국을 철썩 같이 믿고 있다.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자로 살아가려면, 이 세상을 본받지도 말고 사랑하지도 말고 추구하지도 말아야한다. 그리고 날마다 마음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서, 그 뜻대로 삶에 적용해야 한다. 그러나 눈을 뜨고 있으면 세상의 유혹이 엄청나게 쏟아져 들어온다. 상품을 팔아 이들을 보려는 자들은 온갖 광고매체를 통해, 먹고 마시며 육체의 쾌락을 즐기는 게 태어난 목적이라고 세뇌시키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부자가 되기 위해 인생을 바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자는, 세상의 풍조를 따르는 세상 사람들의 인생관을 버리고, 마음을 새롭게 바꾸어서 철저하게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뜻만을 추구하며 살아야 한다. 성경은 그 모습이 진정한 ‘영적 예배’라고 말하고 있다. 즉, 영적 예배는 짐승을 드리던 구약의 제사가 아니라, 자신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물로 드리는 제사(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신앙의 연륜이 오래되고 드높은 교회직분을 가지고 있으며, 교회의 예배의식에 성실하게 참석하고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하더라도, 돈을 사랑하며 자신을 사랑하여 육체의 쾌락을 즐기려는,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는 이들이 허다하다. 이들을 분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주일이 아니라 평일에, 하나님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 지를 찬찬히 살펴보면 된다. 이는 쉬지 않고 기도하라는 사도바울의 권면과 맞닿아 있다. 쉬지 않고 기도하려면, 혼자 있는 시간이면 습관적으로 하나님을 간절히 부르며 찾는 기도를 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세상에 나가면 하나님을 까마득히 잊고 살아간다. 그러다가 주일이면 예배시간에 맞추어 허겁지겁 달려 나오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이런 이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자가 될 수 없다. 단지 기독교를 믿는 종교적인 사람에 불과하다. 이런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갈 일은 결코 없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보라. 작금의 우리네 교인보다 율법지식에 해박하였고, 그들의 희생적인 신앙행위는 우리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들은 예외 없이 지옥에 던져졌다. 그런데 우리네 교인들이 어떻게 천국을 자신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 예배자로 살 것을 결심하고, 삶의 현장에서 적용하지 않는다면 천국에 들어갈 것을 꿈도 꾸지 마시라.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자의 삶을 결심하시고 삶에 적용하시라. 그 길만이 당신과 가족의 영혼을 구하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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