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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가치에 '억눌렸던' 백인 보수층, 트럼프 등장에 해방감

woodsmell 2016. 11. 11. 10:07





동아일보

진보 가치에 '억눌렸던' 백인 보수층, 트럼프 등장에 해방감          

['미국 우선주의' 태풍/막오른 트럼프 시대]<2> 美 '앵그리 화이트'의 반격
[동아일보]
 “만일 동성애자 커플이 자신들의 결혼식에 쓸 피자를 우리 가게에서 주문한다면 난 ‘안 된다(No)’고 하겠다.”

 지난해 4월 미국 인디애나 주 워커턴의 ‘메모리스 피자’ 주인 크리스털 오코너 씨는 한 방송사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가 동성 결혼을 옹호하고 동성애자 차별에 반대하는 진보 진영의 거센 공격을 받았다.

 무차별 사이버 공격은 물론이고 ‘가게 방화(放火) 결행단’ 조직까지 추진됐다. 오코너 씨는

종교적 신념에 따라 동성 결혼에 반대할 수 있는 ‘종교자유보호법’ 찬반 논쟁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힌 것일

뿐이었다. 온·오프라인상의 공격과 협박으로 가게 운영이 힘들게 되자 일부 보수 인사들이 오코너 씨를 돕기 위한

모금 캠페인을 시작했다. 불과 이틀 만에 84만 달러(약 9억6600만 원)가 모였다.

 9일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70)에게 압도적 몰표를 던진 대표적 집단이

‘백인 복음주의 기독교도’(81%)이다. 이들이 메모리스 피자 가게에 ‘조용히’ 성금을 보낸 ‘침묵하는 다수’였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자신들을 짓눌러 온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 때문에 자기 의견을 드러내지 못해 온

 ‘소심한(Shy) 트럼프 지지자’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PC는 성차별이나 인종차별적인 언어나 소수자 및 약자에게 불쾌감을 주는 표현을 바로잡으려는

진보적 사회운동이다. 1980년대 미국 대학가를 중심으로 시작된 뒤 영향력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으로 확산됐다. ‘메리 크리스마스’는 종교색이 짙은 표현이어서 안 되고 ‘해피 홀리데이(행복한 휴일)’란

인사로 대체하는 식이다. 대변인(spokesman)의 ‘-man’이 남성만을 의미하기 때문에 중립적인 ‘spokesperson’으로

쓰자는 것이다.

 트럼프는 지난해 6월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PC와의 전쟁’을 선거 캠페인의 대표 브랜드로 내세웠다. 그는 “기성

워싱턴 정치인들은 정치적 올바름 때문에 문제의 핵심을 얘기하지 않는다. 그러니 아무것도 해결되는 것이 없다.

그래서 미국은 망가지고 있다”고 외쳤다.

 영국 가디언은 “트럼프 지지자 상당수가 PC의 사회적 강요에 질린 사람들”이라고 분석했다.

이들은 “나는 내가 쓰는 단어나 표현 때문에 누가 상처받을까 걱정해야 하는데 내가 PC 때문에

느끼는 죄책감이나 상실감은 아무도 걱정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독설과 직설은 그들에겐

‘내 답답한 마음을 풀어주는 복음’인 셈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퓨리서치센터의 7월 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지지자의 무려 83%가

 ‘너무 많은 사람들이 (PC 관련) 말 한마디 때문에 너무 쉽게 공격받는다’는 인식을 보였다.

반대로 민주당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69) 지지자의 59%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더욱 말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PC에 대한 인식이 극명하게 갈린 것이다.

PC에 대한 거부감은 남자(68%), 백인(67%)일수록 높았다. 반면 흑인의 67%는 PC가 존중돼야 한다는

상반된 태도를 보였다. 여자는 거부감(51%)과 지지 의견(46%)이 엇비슷했다.

 특히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행정부 8년 동안 ‘흑인 생명이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 등

흑백차별 반대 시위, 성적 소수자(LGBT) 인권 존중 강화, 동성결혼 합법화 등으로 ‘PC의 압박감’이 훨씬 컸다고

느끼는 백인들이 더욱 많아졌다. 그들이 대선에서 ‘트럼프 지지’로 대반격에 나선 셈이다.

 버니지아 주 페어팩스에 사는 백인 스포츠칼럼니스트 보 듀어 씨는 9일 기자에게 “오바마 행정부 동안

나는 일종의 짓눌림을 느껴 왔다. 대학 나온 백인이라면 사회적 이슈에 대해 진보적 목소리를 내야 제대로

대우받는 분위기가 점차 부담스러워졌다는 게 솔직한 내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를 찍었다.

 미국 건국의 토대인 기독교적 가치, 보수의 대표적 상징인 애국주의가 사회 곳곳에서 무너지고 있었는데

트럼프의 ‘PC와의 전쟁’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외침이 듀어 씨 같은 백인들의 마음을 파고든 것이다.

 미국 내 적지 않은 중고등학교에서는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을 존중한다는 이유로 미국 성조기 게양조차

삼가기도 하고, 일부 프로 스포츠 선수들은 미국 사회에 대한 불만을 성조기에 대한 경례 거부로 표현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은 “개인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며 옹호했다.

 올 4월 미 재무부는 ‘20달러 지폐 앞면 인물을 현재의 앤드루 잭슨 전 대통령(7대)에서 흑인 여성 인권운동가

해리엇 터브먼(1822∼1913)으로 변경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때 민주 공화 경선 후보들 가운데 유일하게

트럼프만 “PC의 또 다른 나쁜 사례”라며 “잭슨 전 대통령도 미국을 위해 큰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를 앞면에

그대로 두고 터브먼은 새로운 단위의 지폐를 만들어 모델로 세워도 되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월가 대형은행의 한 백인 임원은 “그 전까지 내 주위의 고학력 고소득 백인들은 트럼프를 우습게 봤다.

그러나 트럼프의 비판은 매우 합당한 것이었다. 그때가 트럼프에 대한 백인의 지지세가 저학력 노동자에서

고학력 화이트칼라까지 확장된 순간”이라고 말했다.

뉴욕=부형권 bookum90@donga.com /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 한기재 기자